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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역사

책의 역사 11

안녕하세요 오늘도 한번 이어서 책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세계로 뻗어나간 인쇄술은 1550년 무렵에는 러시아에 정착을 했고, 16세기 말 일본과 중국을 거쳐 1638년에는 미국까지 도달했습니다. 미국 캠브릿지(매사추세츠주)에 북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인쇄소 스티븐과 매튜 데이의 인쇄작업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은 꾸준히 출판 관련 직종 들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논쟁의 위력이나 사상적 동향을 확대시키는 능력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1639년에 지금의 프랑스 국립 인쇄소인 루브르 왕립 인쇄소를 설립하면서 이미 리슐리외는 독점 출판권을 얻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는 인쇄작업장에 최신 설비를 갖추고 유명한 인쇄인 세바스티앙 크라무아지를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엄청난 예술가들의 협조를 받아 국가의 위엄과 신망을 높이는 뛰어난 작품들을 출판했습니다. 또한 리슐리외는 당시 루이 13세의 권한으로  '최고의 인쇄인'이라는 자격증 제도도 발전시켰습니다. 루이 14세가 즉위하면서 프랑스에서 승리를 거둔 정치적 절대주의는 예전부터 골칫거리로 입에 오르락 내리던 출판 관련 직종들을 수하에 거느리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모든 국가(가톨릭 국가, 프로테스탄트 국가 상관없이 모든 국가)의 권력층은 종교나 윤리적 문제, 정부의 이념과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악서'들을 토방 할 목적이었습니다. 

 

프롱드의 난은 루이 14세가 소수당 시절에 마자랭이 주도한 정책적 논쟁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마자랭을 비꼬는 풍자글들이 거리에 나돌았는데, 이러한 일을 종식시킨 사람이 콜베르였습니다. 콜베르는 마자랭의 보좌관으로 정치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출판직의 규제나 출판물에 대한 지원, 왕립 도서관 발전에 많은 개입을 했습니다. 마자랭도 책 수집가로서 화려한 제본 작품들을 서재에 진열했습니다. 1667년부터 파리는 감시를 심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인가를 받은 인쇄인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인쇄장비들의 판매가 규제되었고 책 수하물들은 감시되었고 인쇄소들은 강제수색을 당했습니다. 위반 시에는 감옥 바스티유로 수감되었습니다. 이 출판 정책은 좋은 인쇄인들에게나 관대했고 꼭 필요한 특허권 부여하는 것도 감시가 수월한 파리인들에게 편의를 봐주면서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신간이 부족했던 지방 인쇄인들은 금서를 인쇄하거나  위본을 제작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대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701년 출판국이 신설되면서 규제가 더욱 엄격해졌습니다. 특히 네덜란드 같은 외국과의 경쟁관계를 이용해 프랑스 인쇄인을 힘들게 했습니다. 영국의 출판정책도 프랑스와 같은 방법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스튜어트 왕가는 검열제도를 강요하여 왔으나, 1709년 저작권 보호를 위해 최초로 실시된 '판권 조례'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초기부터 이탈리아의 출판은 쇄국정책을 쓰면서 수출은 거의 하지 않고 몇 년간 리옹 출판물을 중계하다가 제네바 출판물과 거래했습니다. 차츰 프로 테트 탄트 국가들의 유럽의 책 상권을 장악해 갔습니다.

 

 

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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