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앞서 말한 정기간행물에 대해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최초로 시도된 정기간행물은 1605년에 플랑드르에서 아브라함 베르호벤이 격주로 발간한 '나우베 티딩 게'였습니다. 이어 런던에서 발간된 1622년의 '위클리 뉴스', 바젤,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발행인들 수가 늘어났습니다. 프랑스는 리슐리외가 주도하여 보도가 실린 한 장 짜리 인쇄물 즉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라 가제트'의 편집 감독은 보다 몇 개월 일찍 창간된 '누벨 오르디네 르 드 디베르 앙트 루아(각 지역 일간 뉴스)'의 에오프라스트 르노도가 맡았습니다. 총 4페이지로 구성되어 있고 책과 비슷한 외형을 가졌고 특히 외국에 관한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17세기 정기간행물들은 보급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부수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3000부 미만으로 발행되던 '라 가제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사서 보거나 1년 치 연감을 기다렸습니다. 30년 전쟁 기간 중의 독일처럼, 정치적인 사건들 대문에 소책자와 팸플릿 붐이 일 때도 있었습니다. 최초의 신문은 프랑스 국정의 공식 기관지의 성격의 뗬습니다. 몇 년 후, 당국에 엄격한 통제에도 정기간행물의 수는 증가했으며, 짧은 단신을 전하는데에서 발전하여 논평도 함께 실었습니다. 몇몇은 전문화되었고 1665년에 콜베르가 창간한 '주르날 드 사방(지식인들의 신문)'은 도서목록에 대한 정보를 다루어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18세기 특히 영국에서 신문은 정치적이고 지적인 논쟁을 다루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1702년에는 영국 최초 일간지 '데일리 쿠란트'가 창간되었고, 프랑스에서는 훨씬 더 늦은 1777년에 '주드 날 드 파리'가 나타났습니다.
책을 사지 않아도 접할 기회는 있었는데, 서로의 양상은 달랐지만 교회나 철야 모임 같은 기회를 이용하였습니다. 처음엔 그림으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정치선전 도구나 기독교적 전파 물, 오락거리가 될 전단 등을 집 담벼락, 교회, 일터 등에 붙이곤 했습니다. 16세기부터 도시에서는 하루 기한의 '카나르' 또는 '오카 지오 넬'이 유통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카나르는 쉽게 보기 위해 삽화를 넣어서 단순한 낱장의 크기나 작은 가제본(브로슈어) 형태로 거리에서 판매되었습니다. 보통 여론을 알리는 사건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왕의 도시 입성이라던가 황태자의 탄생, 기적적인 사건들, 자연재해 등이 실려 있었습니다. 소책자들을 배포했던 도부상들은 이리저리 오가며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 상황에도 정통했습니다. 금서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해서 정부의 추격을 피해 다녔고 점점 통제하기 힘든 요주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도부상은 도시의 큰 서적상에도 특정 책자를 납품했습니다. 당시 시골은 서적상 유통망이 없었기 때문에 도부상은 종종 외딴 지역까지 정해진 코스를 따라 물건을 날라야 했습니다. 가죽끈으로 맨 나무상자를 목에 두르고 팔러 다녔던 도부상들은 상자 안에 온갖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오랜 전통의 계승자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인쇄술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푸른색 표지로 된 저자 불명의 소책자들을 수백만 부나 팔았던, 문학작품의 보급자 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도부상들의 문학작품 이야기를 이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