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의역사

책의 역사 15

책의 인쇄부수는 몇백 부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2000-3000부를 찍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의 초판 부수가 3000부였고,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편찬한 '사전'은 1500부였습니다. 종교서 중 특히 전례서와 교과서, 대중문학 작품은 전통적으로 총 인쇄 부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제작방식이 변하지 않았다면 책 외형에 변화가 있었을 것인데 큰 판형은(2 절판)은 조교서나 법률서, 역사서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활판 활자들은 갱신되기 시작했습니다. 1602년 루이 16세 통치 때 엄중한 분위기를 띠는 으뜸 로마체 활자를 필리프 그랑 장이 창안했습니다. 주요 사건들에 대한 훈장용으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 작품의 제목들이 매우 길어지는 이유도 활자 때문이었습니다.

 

엘체 비에가 출판물은 별도이고 17세기의 활판 기술은 지나치게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17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왕립 인쇄소가 혁신적으로 가라몽 활자이래 상용되던 활자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활자들을 고안해냈습니다. 당시 상용되던 서체들은 가늘고 굵은 특징이었다면 차별성을 두기 위해 훨씬 기하학적인 활자들이 그랑 장을 통해 도안되었습니다. 그것이 으뜸 로마체 활자였습니다. 다음 세기 활자 도안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으뜸 로마체 활자

 

당시에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유실된 상태였지만, 삽화 관련하여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거의 정부 동판으로 교체되었는데 목판은 투박하기로 유명해서 책의 장식 요소 들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백의 장식 삽화나 테두리선, 사명 도안 등이었습니다. 동판 술은 원본의 미적 감각이나 정확성, 선명함 등을 살려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출판에서 삽화는 대부분 내지 그림에 속하며, 속표지와 나란히 놓인 위치에 흔히 작가의 모습이 실리곤 합니다. 실상은 당시 판화예술은 책과는 별도로 고유 상거래 조직과 같이 발전했습니다. 또한 특정 작품들을 뛰어난 예술가에게 의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앙베르에서 루벤스는 모레투스를 위해서 작업을 했고, 프랑스의 자크 카요나 아브라함 보스(동판화 기법의 성공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1645년에 '동판 인쇄 법의 개론서'를 출간했습니다.), 클로드 멜랑, 라퐁텐 우화집에 삽화를 그려 넣은 프랑수아 쇼보가 그 예로 들 수 있었습니다.

 

17세기에 책에서 기교를 나타낼 수 있는 공간은 삽화가 들어가는 속표지뿐이었습니다. 구성에서 착안하여 시작하는 테두리 그림은 이전 세기에 시작된 관행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또 다른 작은 액자들을 끼워 넣어 그 공간에 글의 삽화를 실었습니다. 1630-1540년에는 기교를 훨씬 더 절제하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663년 콜베르는 아카데미에 의뢰하여 베르사유 궁전 왕의 거실 벽걸이용 장식에 새길 문구를 고르도록 했습니다. 자크 바유가 긴 시간 끝에 세밀화를 그린 호화로운 장정의 필사본을 발견했고, 그것을 세바스티앙 르클레르가 1669년에 동판 인쇄하여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중에 제일 인기가 있는 책을 수정, 보완해서 1611년에 런던에서 출간한 책 세바스찬 설리가 쓴 '최초의 책의 구성이 있습니다.

'책의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의 역사 17  (0) 2020.09.26
책의 역사 16  (0) 2020.09.25
책의 역사 14  (1) 2020.09.23
책의 역사 13  (0) 2020.09.21
책의 역사 12  (0) 2020.09.20